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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997 KBL 챔피언결정전
덤프버전 :
90 대 107 4초... 3초... 리드가 마지막!!![1] 기아의 우승입니다! 107 대 90 부산기아가 97 프로농구 원년 우승을 차지하면서 프로농구 97 리그가 막을 내리게됩니다.
- 1997 시즌 우승콜
1. 개요[편집]
한국프로농구 최초의 챔피언 결정전이자 초대 챔피언의 영광을 누릴 팀을 가리는 경기. 리그 1위팀인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와 리그 3위팀인 원주 나래 블루버드가 맞붙었다.
2. 대진표[편집]
2.1. 한국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매치 :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VS 원주 나래 블루버드[편집]
2.1.1. 매치업 예상[편집]
2.1.1.1.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[편집]
2.1.1.2. 원주 나래 블루버드[편집]
2.1.2. 1차전[편집]
2.1.3. 2차전[편집]
2.1.4. 3차전[편집]
2.1.5. 4차전[편집]
2.1.6. 5차전[편집]
3. 여담[편집]
-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는 KBL이 출범한 1997년 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KBL 최초의 통합 우승을 달성한 팀이 되었다.
- 기아는 다음 시즌에도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다. 그러나 상무에서 제대한 이상민과 조성원, 신인 추승균, 외국인 선수 조니 맥도웰이 합류한 대전 현대 다이냇을 상대로 7차전까지 간 접전 끝에 패하면서 2년 연속 우승에는 실패했다.
- 중립경기 제도가 처음으로 시행된 챔피언 결정전이었다. 서울 올림픽 공원 제2체육관에서 중립경기가 열렸으며, 다음 시즌부터 2000-01 시즌까지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중립 경기가 열렸다. 이후 2009-10 시즌에 챔피언 결정전 중립 경기가 부활했지만 팬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2010-11 시즌을 마지막으로 중립경기 제도는 완전히 폐지되었다.
- 1997년 기아가 우승하던 이 시기 즈음이 부산 스포츠의 리즈 시절이었다. 롯데 자이언츠는 준우승-3위를 찍었고[2] 부산 대우 로얄즈라는 명문팀이 존재하던 시기였기 때문.[3] 기아는 이 우승 이후 불과 4년만에 울산으로 떠나 그 이후 우승만 6번을 더하면서 명문팀을 유지한 반면, 롯데에는 최악의 암흑기가 도래, 대우 로얄즈는 모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구단주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성적도 나오지 않는 부산 아이파크가 되어버리고 만다.[4] 그나마 2003년 여수에서 연고지를 이전해온 KTF 매직윙스가 4위-4위-준우승을 찍으면서 좋은 성적을 올렸고 부산 농구의 명맥을 이어갔지만 이 팀도 2021년을 끝으로 수원으로 이사를 간다.
- 챔피언 결정전 MVP를 수상한 기아의
강동희는 2003-04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었으나, 2013년에 터진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실형 선고를 받고 결국 KBL에서 제명되었다.
- 당시 매니저였던 추일승 감독은 원년 통합우승을 지원한 이후 상무 농구단의 감독으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. 2003-2004 시즌부터 부산 KTF 매직윙스의 초대 감독으로 시작해서 2006-2007 KBL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지도력을 인정받게 된다. 2015-2016 시즌에는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감독으로 4강전에서 울산 모비스 피버스를 3전 전승으로 누르고 KBL 파이널에 진출한 이후 마침내 KBL 플레이오프 챔피언에 오르면서 기아 출신 지도자의 성공사례를 쓰게 된다.
- 박승일은 프로농구 원년 통합우승을 도운 이후 1998년에 은퇴를 선언했으며, 2002년에 울산 모비스 오토몬스 코치로 부임한지 얼마 안 돼서 루게릭병 투병으로 인해 사퇴했었다.
[1] 우승기념으로 덩크를 꽂으려 했으나 실패했다(...)[2] 하지만 그 해에 다른 부산 연고 2팀과는 달리 1997년에 최하위를 기록[3] 대우 로얄즈도 1997년을 끝으로 마지막 리그 우승을 했고 그 뒤로는 리그 우승과 연을 잇지 못하고 있다.[4] 2015년 한 차례 강등되었다가 2019년에 다시 승격했다.